1 한나 아렌트, 2003

2 촉수는 영어로 tentacle 이고

어원은 라틴어 tentaculum이다.

Tentaculum는 feeler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tentare가

‘느낀다’와 ‘행동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다.

3 https://www.express.co.uk/news/science/958247/alien-octopuses-cephalopods-earth-outer-space-aliens-cryopreserved-eggs-cambrian-explosion

4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된

⟪보이스리스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의 도록에 실린 조은지의 영상작업 ⟨봄을 위한 목욕⟩의 작품설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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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지를 방문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1

 

배은아

 

조은지는 요즘 유튜브YouTube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개월 사이 작가와 필자의 카톡방에 올라온 유튜브를 보면 문어에 대한 과학영상에서부터 개식용 반대 국민청원까지, 독립영화 프로그램에서부터 지식 공유 테드TED까지, 구찌 패션쇼에서부터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강연까지 하나의 주제 혹은 하나의 형식으로 규정짓기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엇인가 기댈만한 전제를 찾아내야 하는 나의 습관적인 노력 속에서 나는 이 난감함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을 기억했다. 지난 십여 년간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만나고 스쳤던 조은지의 작업들은 매번 기대 바깥의 것들을 들고 나왔고 그것이 잡힐만하면 조은지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었다. 어쩌면 조은지에게 사물들을 구별하고 분리해서 하나를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 통계적 논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듯 하고 아예 이질적 상반된 두 개라는 것은 전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궁금하니까. 이것이 내가 그나마 발견할 수 있었던 이 모두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전제였다. 이성중심의 이분법적 가치 체계 속에서 대립된 두 항은 결코 동등하지 않을뿐더러 둘 중의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해 억압될 수 밖에 없지만 궁금하다는 것은 비교적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사실, 궁금하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는 했고 때로는 가장 진실한 관계 맺음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튜브 세계를 항해하는 조은지의 관심은 어떠한 주제를 연구하고자 하는 논리적 리서치라기 보다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야기들에 자석처럼 끌려서 아예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다른 관심의 대상으로 곧장 횡단하는 ‘축지법’ 같은 것이다. 한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한 세계의 안에서 바로 다른 세계의 안으로 뛰어드는 것. 즉 입구와 출구를 구분하지 않고 둘을 하나의 그러나 다른 공간으로 접어버리는 것. 조은지의 이것을 나는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소위 말하는 다원예술과 융복합 예술의 장르간의 교류나 협력 같은 행적 언어로 과연 조은지의 꾸물꾸물 일어나서 전체의 부분을 해체하고 다시 무언가를 재구성하는 이상한 패턴의 정체를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녀의 호기심을 무모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녀의 관심 끌림을 수동적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이러한 영향 받음을 모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페미니즘의 타자성 이론이나 신체를 통한 정치적 함언 혹은 전위를 통한 탈각된 정체성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조은지가 만들어내는 모든 결과물이 궁극적으로 한 편의 시로 귀결되고 있음을 나는 이 글로 다다를 수 있을까?

조은지가 문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때는 작년 겨울 즈음이었던 것 같다. 검은 액체를 뿜어내는 문어에서 떠오르는 강력한 이미지를 기대했던 나는 (실제로 나는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제레미 딜러의 불탄 집에서 기어 나오는 문어를 3D 프린트로 제작한 적이 있다) 지난 5월 스페이스 휘슬에서 열린 조은지의 ⟨문어어문 文魚魚文 Letter Fish Fish Letter⟩에서 다시 한번 기분 좋은 배신을 당했다. 조은지의 문어에 대한 이야기에 정작 문어는 출현하지 않는다. 문어에 대한 어떠한 이미지도 어떠한 성질도 재현되지 않는다. 다만 조은지의 문어란 무엇일까에 대한 잡히지 않는 궁금증만을 남겨놓았다. 생물체로서 문어는 어떻게 그리고 왜 문자 물고기(文魚)로 쓰여지는 것일까? 문자의 물고기와 물고기의 문자 사이에서 문자와 물고기와 문어는 사라지고 또 다른 무언가가 피어 오른다. 누군가는 이것을 상상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사유라고도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이야기 만들기의 공간을 ‘방문하기 위한 마음의 훈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어(文魚)는 4쌍의 8개의 다리를 가진다. 문어는 척추가 없고 다리에는 빨판이 달려있는 바다 깊은 곳에 사는 연체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문어는 식탁 위에 종종 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문어의 촉수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은데, 문어의 머리에 돌출된 뿔 모양의 쉽게 구부러지고 상대를 휘어 감는 길쭉한 기관이 있을 촉수라고 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이러한 연체동물의 돌기를 촉수2가 아닌 주변환경을 감지하고 상대를 감각하는 촉각 혹은 촉완 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촉수는 자유롭게 상대를 포착하고 부착하는 능력을 가진다. 문어는 기분에 따라 색이 변하는데 흰색은 공포를 붉은 색은 분노를 드러내는 보호색이다. 문어는 개체 간의 계급을 형성하지 않고 큰 개체 앞에서 작은 개체가 물러나는 방법으로 그들만의 평화를 유지한다고 한다.

문어(文語)는 글로 씌어지는 말이다. 입으로 하는 말을 우리는 구어(口語)라고 한다. 문어 즉 글쓰기는 역사적으로 남성의 것이었다. 여성의 글쓰기는 발화의 자리를 찾지 못한 침묵의 언어 혹은 호흡의 언어였기에 긴 역사에서 제외되어 왔고 역사에 남았더라도 결여된 남성의 글쓰기로 취급되어 왔다. 이를 비판한 엘렌 식수Hélène Cixous는 메두사의 웃음Le rire de la méduse에서 여성의 글쓰기는 남성의 글쓰기보다 하위의 것으로 취급되어 감정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개인적 고백으로 취급되어왔음을 지적하며 이는 모든 상징체계가 남성중심의 이항대립적 구조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엘렌 식수는 전통적으로 여성을 규정짓는 자질들 즉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감추지 않고 즐기는 것, 타자에 대한 수용적 성질과 법을 거부하는 파괴력을 그대로 담아내는 글쓰기 만이 이성적인 논리를 주장하는 남성적 담론에서 해방되는 길이라고 피력한다. 조은지의 ⟨문어어문⟩은 오래된 책들을 낱장으로 발췌해서 자르기와 낙서하기, 그리고 색칠하기와 같은 행위 흔적이 남겨진 드로잉 ⟨문어로 쓰여진 가사 Song text by Letter fish⟩ 시리즈와 그 낱장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서 출렁거리게 걸어 놓은 ⟨인간의 과거를 꿈꾸는 문어 Letter fish dreams human’s past⟩와 ⟨나의 두뇌에 들어가는 방법을 아는 문어 Letter fish knows how to enter my brain⟩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낱장으로 찢어서 길게 붙여 사용된 고서들은 작가가 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인문학 책들이다. 60-70년대 ⟨한국문학전집⟩,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의 사유⟩. ⟨녹색평론⟩, ⟨셜록 홈즈⟩, ⟨서양미술사⟩와 같은 이론서들을 해체하고 재배열하고 재조합 하는 조은지의 행위는 어쩌면 엘렌 식수가 말하는 여성적 글쓰기의 또 다른 형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문어(文魚)는 동서양을 망라하고 공상과학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지구 밖의 미래에서 온 우주 생명체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상상력은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안다는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33명의 연구자 단체가 발표한 연구결과3에 의하면 척추동물을 제외한 모든 동물군이 출현한 캄브리아기(지금부터 5억 4,100만년 전에서 약 4억 8,800만 년전까지)의 폭발적 성장이 우주에 생존하던 유기체 세포들의 집단들과 지구가 충돌하면서 만들어졌으며 그 때부터 저온 보존이 가능했던 문어 알이 오징어 과의 생물들과 결합하면서 캄브리아기로부터 2억 5천년이 지난 지금으로부터 2억 7천년전에 급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했다는 이론이다. 즉 문어가 우주에서 온 미래의 외계인인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조은지가 문어라는 지구상의 이상한 생물체에 천착하는 이유는 문어가 가지고 있는 촉수의 유연함과 촉촉함에서 오는 관능적이고 기괴한 감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문어는 두뇌와 몸이 하나로 통합된 일체형이라는 점, 그리고 상황에 따라 색과 모양을 변화할 수 있는 다중 신경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타자를 관찰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 그리고 타자를 관찰함으로 해서 배우고 진화하고 변화할 수 있는 유전자적 신비 때문일 것이다. 타자와의 소통은 법적으로 해결하고 정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변할 수 있도록 주변환경에 놔두는 것이다. 진실한 소통은 정체성이 변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그 상황에서 정체성이 겪는 경험을 사유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오히려 궁금하니까. 이는 진심으로 타자와 관계를 맺는 시작이 된다. 타자와의 소통의 주체가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다고 믿을 때 우리는 편협해지며, 그 자리를 바뀌어 나 자신이 소통되어야 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유가 불가능할 때 소위 말하는 인류세anthropocene에 의해 잠식되고 그 인류가 건설한 자본세capitalocene의 노예가 된다. 다나 해러웨이가 말하듯이 이제 우리는 인간이 아닌 그 밖의 환경, 동물, 생물, 기계에 눈을 돌려 우리 스스로가 타자들에 의해 변화되는 정체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실뜨기’를 시작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조은지는 작가이다 조은지는 연출가이다 조은지는 음악가이다 조은지는 페미니스트이다 조은지는 동물애호가이다 조은지는 채식주의자이다 조은지는 액티비스트이다 조은지는 이 모두의 경계를 위반하는 사람이다 조은지는 이 모두의 경계에서 우연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조은지는 이 모두의 경계에서 부분이고 합이다 조은지는 이 모두의 경계의 꼭지점을 접는 사람이다 조은지는 이 모두의 경계에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가는 시인이다. 조은지가 다루고 있는 재료들; 흙, 계란, 꽃, 소, 원형, 번쩍임, 신화, 의식, 땀, 태양, 노래, 음악, 언어, 패션, 학살, 이민, 학대, 재난, 죽음, 등은 때로는 예술을 지속하기 위해서 때로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때로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 무수히 다른 색으로 변신하는 조은지의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응답하는 태도4’가 이입되는 질료들이다. 그 질료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정치적 영향으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존재들이며 혹은 모든 개인마다 모든 사회마다 다른 형태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타자적 존재들이다. 감각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넘나들기 혹은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그러잡기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들이 스스로 불안해지기를. 그 이야기들이 또 다른 이야기들로 재생되기를.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는 것들을 비정상으로 비틀어보고 비정상이라고 믿는 것을 정상으로 돌려보면서 작은 생각들이 계속해서 생각해 나가기를. 너에 의해서 변하고 그들에게 응답하면서 우리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계가 세계를 세속화하기를. 마치 두뇌와 몸이 일체 된 문어처럼 생각하고 동시에 행동하기를 혹은 그 반대로.

 

 

이 글은 2018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2기 비평워크숍의 결과물 ⟨조은지의 축지법과 실뜨기⟩를 수정 보완하였다.